철새들의 수난 시대
철새는 병균 덩어리?
이승호 책임연구원
(한국수권환경연구센터)
인간의 이기주의로 야생동식물 서식공간은 점차 줄고 있다. 고차소비자인 조류는 저차소비자의 감소에 따라 먹이사슬에 의한 감소경향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70년대 이후 각종 개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갯벌, 습지, 하천, 호소 등의 생물 서식공간이 감소되고 먹이원 감소가 됨에 기인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남한기준)에 보고된 조류는 382종이며, 그 외에 12종을 포함하면 394종에 이른다. 멸종됐다고 보고되는 원앙사촌 1종과 53종의 미조를 제외한 340종 가운데 57종은 텃새이고 283종은 철새며, 평균 116종의 겨울철새와 64종의 여름철새, 봄·여름에 우리나라를 거쳐서 가는 나그네새(통과조) 103종으로 이뤄진다.
겨울철새는 여름에 시베리아와 북만주 등지에서 번식한 뒤 우리나라에는 매년 11월 초부터 시작해 이듬해 1월 사이에 찾아와 월동한 후 2월 말부터 3월 중순이 되면 번식지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겨울철새 중에서 개똥지빠귀, 노랑지빠귀, 되새, 멋쟁이새 등과 같이 산림에 도래하는 종류는 그 수와 종다양성이 떨어지는데 비해 해안과 습지에 찾아오는 조류의 종다양성은 매우 높고 그 수 또한 많다. 대표적인 종으로는 재갈매기, 세가락갈매기, 붉은부리갈매기와 같은 갈매기류와 대부분의 기러기류, 오리류, 고니류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주로 강이나 호수, 해안 등과 같은 월동지에서 대규모로 무리를 지어 겨울을 난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국내에 도래하는 겨울철새의 현황파악 및 철새서식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역을 선정하고 보호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축적하기 위해 전국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를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센서스에서 지난 '03년에는 189종 97만8천472마리가 관찰됐고 작년에는 총 185종 111만3천627마리가 관찰됐다. 금년에는 1월에 총 182종, 118만6천295마리로 조사됐다. 종별로 보면 대규모 군집을 이루는 가창오리가 33만7천588마리로 가장 많았고 청둥오리 24만9천432마리, 큰기러기 8만6천116마리, 쇠기러기 8만4천39마리, 흰뺨검둥오리 8만3천79마리 등 순이었다.
특히 '04년에 각각 6만7천761마리와 5만1천341마리로 조사됐던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등 기러기류가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지역별로는 고천암호에서 관찰된 개체수가 13만7천133마리로 가장 많았고 금강호 11만6천343마리, 영산호 8만5천343마리, 한강하구 5만4천478마리, 만경강 5만2천954마리 등 순으로 예년과 같이 겨울철새들이 주로 서해안에서 많이 관찰됐다.
수치상은 우리 습지를 찾은 조류수가 증가한 것으로 보이나 종수는 오히려 감소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류 개체수 증가는 철새도래지 소재 지자체와 시민단체, 환경 NGO에서 철새 모이주기, 밀렵감시, 무논(Bird Zone) 조성 등의 철새 불러오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류조사 센서스에 참여하는 전문가와 조사기법 다양성이 증가됐음을 감안한다면 종 개체수가 늘어난 것은 별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종이 감소한 것은 조류 휴식지의 단순화가 분명히 톡톡히 한몫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올해 철새는 또 하나의 적(?)을 두고 생존경쟁을 해야 한다. 요즘 문제가 되는 조류독감(bird flu)이 그 것이다. 연일 언론매체를 통해 나오는 조류독감 문제에 철새가 매개체로 지목되면서 철새도래지 주변 가금류 사육장에서는 방역을 비롯 수렵총 동원, 화약사용 등으로 철새를 쫓아낼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한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단백질에 따라 H형(H1∼H15 15종)과 N형(N1∼N9 9종)으로 구분되며 두 가지 단백질의 조합에 의해 총 135종류의 혈청형으로 나뉜다. 이중 아시아 지역에 유행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혈청형이 'H5N1'이다. 이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유전자의 변이 속도가 매우 빠르고 다른 동물의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와도 잘 결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돼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고 있는 고병원성인 H5 바이러스는 철새의 배설물에서 관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돼 있어서 역학관계의 철저한 조사가 요구된다. 만일 철새가 매개체가 아니라고 역학관계 조사에서 입증된다면 지금 입고 있는 철새에 대한 막연한 경계는 어떻게 풀어주려고 하는 것인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철새의 종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학계와 NGO, 지자체는 엄청난 노력을 벌였다. 그 동안의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 철새에 대한 막연한 경계와 내쫓음보다는 보다 철저한 역학조사와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굳이 쫓아내지 않더라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이러한 무분별한 습지훼손과 개발만으로도 철새의 종은 충분히 감소되고 있고 많은 종들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조류의 종 감소가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철새들이 지금도 꾸준히 찾아오는 것은 지금도 그나마 새들의 쉼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추정으로 찾아오는 철새를 영영 돌려보내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