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는 물론 어업·발전산업 위협
개체군 증가 원인 파악해 제어해야
채진호 박사(한국수권환경연구센터 소장)
해파리가 요즘 자주 화두로 등장하는 모양이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감독한 일본 영화 '밝은 미래'에서 해파리는 이 시대의 젊은 영혼들에 대한 훌륭한 상징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요즘 우리나라 바다에 해파리가 너무 많아졌다는 문제꺼리의 대상으로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들이라면 뱀, 지렁이, 나방 애벌레 따위의 종류들에게까지도 뭔가 멋진 구석이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쏘이거나 물리지 않게만 할 수 있으면, 그리고 바퀴벌레를 제외하면 어떤 동물이라도 거리낌 없이 만질 수 있었다.
또, 등교 길에 잡은 뱀을 나중에 감상할 생각으로 학교에 갖고 가서 얼마나 귀여운지를 설득하며 친구들을 놀라게 했던 터라, 적절하게 균형이 갖춰진 방사형의 해파리 생김새에서 무한한 조형미를 느낀다고 얘기해도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투명한 동물이 무심하게(해파리는 중앙신경계, 즉 뇌가 없다)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자연계에 존재하는 유영의 자세 가운데 우아함의 극치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이다.
그러나 해파리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모두 필자 같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해파리를 포함해서 바다에 살고 있는 동물플랑크톤은 개체들끼리 서로 모여 분포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것이 종종 매우 큰 모임인 경우가 있다.
그 양은 생물종의 습성이나, 환경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데, 요즘 특히 황해와 남해에서 여름에 발견되는 해파리 떼는 예전과는 다르게 상당한 양이어서 도대체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사람들은 해파리에 쏘이면 적어도 아플 거라고 알고 있는 데다, '매트릭스'나 '스피어'같은 미국 영화에서도 해파리(또는 해파리 같은 가상의 생물체)는 공격적이거나 공포, 위기의 대상으로 다뤄진 것으로 봐서도, 떼를 이루고 있는 해파리에 대해서 사람들이 친밀감을 갖기는 어려운 듯하다.
게다가 수면의 위에서 보는 해파리의 물컹거리는 모양은 잠수를 해서 보거나, 수족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해파리가 떼로 다니고 있다는 데 유쾌한 기분을 갖지는 않는다.
거기에 더해서, 예전에도 흔하기는 했던 작은 크기의 물해파리(정확히는 보름달물해파리, 학명은 Aurelia aurita) 뿐 아니라 보다 더 큰 종류의 해파리들이 이제는 자주 보이는 데다, 심지어 다 자랐을 때 무게가 150∼200kg 쯤 나가는, 사람보다 훨씬 큰 녀석들(노무라입깃해파리, 또는 큰덤불해파리, Nemopilema nomurai)이 끝없이 무리 지어 행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일종의 야릇한 위기감까지 느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예전에 찾기 힘들었던 이런 해파리의 대량 분포가, 보기에 기분이 언짢거나 수영을 즐기기는 글렀다고 느낀다는 데서 그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민들은 어망에 해파리가 잔뜩 걸려 그 무게 때문에 망을 끌어올릴 수도 없어 그만 끊어내야 하는 지경이라 해파리가 밉기만 하다.
설사, 어망을 끌어올릴 수 있어도 그렇게 많은 해파리를 어디 쓸데도 없고(흔히 떠오르는 생각이 중국 음식의 재료이지만, 가공 과정이나 수익에 비해 높은 노동력, 비용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다), 그나마 같이 잡혀 올려진 소량의 물고기들은 해파리에 무수히 쏘이고 난 다음이라, 상품 가치조차 없다.
해파리는 바닷물을 냉각수로 쓰는 큰 산업시설에도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예컨대 해파리가 발전소의 냉각수 취수구에 몰려 들어와, 냉각해수의 이물질을 걸러내는 스크린을 막아버리는 일이 최근에 빈번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스크린의 바깥쪽과 안쪽의 차압이 몹시 증가하게 되면서 냉각해수를 공급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결국, 발전을 정지하거나 발전용량을 줄이면서 조심스럽게 운전해야하는데, 울진 원자력발전소의 경우처럼, 스크린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해파리를 밤새 떼어내야 하는 발전소 관계자들의 고생도 고생이려니와, 경제적 손실도 이만저만 아니다.
발전소의 취수구에 유입되는 해파리의 양은 정말 놀라울 정도여서, 울진 원자력발전소에 가장 많이 들어왔던 2001년 8월에는 그 양이 하루에 5천톤을 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런 현상들이 오랜 전부터 계속된 것이 아니라 최근에 와서 시작된 것이라면, 최근의 바다는 해파리가 우점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변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해파리의 대발생(blooming)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는 해파리 등 소위 젤라틴 플랑크톤의 생물량 산정을 학자들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경향이 있어서 종종 무시되었었지만, 오랜 자료 등을 축적한 해역에서는 해파리의 생물량이 변화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기도 하다.
지중해처럼 주기적으로 증감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베링 해, 아프리카 인근, 독일과 노르웨이, 멕시코 만, 남반구 해역 등 상당한 바다에서 해파리의 생물량은 증가하고 있고, 원래 어떤 해역에서 과거에는 없던 종이 이동하여 새로 정착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들에서 보이는 결과이다.
보름달물해파리는 이제 전 세계에 분포하는 종이 되었고, 극동의 해파리 대발생, 특히 거대한 노무라입깃해파리(큰덤불해파리)의 대량 분포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공통된 문제다.
해파리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 때문에 연구에 적용할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야 하는 등 아직 해파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자주 관찰되는 해파리 생물량의 급속한 증가, 수산업과 산업시설이 입히는 피해 등 덕분에 최근 해파리의 연구는 활발해졌다.
아직 충분히 입증이 안 된 가설 수준일 수도 있으나, 이제까지의 연구는 해양생태계에 해파리가 더 많아진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로 함축해서 설명하고 있다.
해파리와 공통된 먹이자원을 이용해 경쟁 관계이기도 한 어류자원의 남획, 수온이 상승하면서 겨울나기가 가능한 지역이 더 늘어난 점, 해파리는 둥둥 떠다니는 메두사 형태의 생활기 뿐 아니라 어린 시기에 어딘가에 붙어사는 폴립의 생활기도 갖는데, 이 폴립이 서식할 수 있는 인공구조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점 등이다.
또, 생물들이 서식하기에 취약한,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 부영향화된 지역의 바닥 부근에서 증가하고 있는 데 비해, 이런 환경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해파리 폴립의 상대적 우위 등이 해파리 대발생에 대한 메커니즘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과거처럼 갑각류 동물플랑크톤에서 어류로 이행되어 가는 것이 중요한 골격이었던 먹이망의 구조 대신, 해파리 등의 젤라틴플랑크톤이 중요한 구성요인이 된 먹이망 구조가 더 많아졌을 거라는 설도 제시되고 있다.
결국, 바다 생태계 구성 생물들의 상대적인 많고 적음과 상호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해파리의 대발생은 해파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해양생태계의 전반적 변화의 문제 가운데 눈에 들어 나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해파리 떼를, 어획된 어류 자원, 또는 냉각 해수와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각각 개발되어, 어구나 산업시설물의 냉각 취구 설비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해파리의 분리 기술은 만일 성공하기만 한다면, 해파리에 의한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하고 효율적 방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해파리를 실제 분리하고 걷어내서 다른 장소로 옮겨 처리하는 것이 적극적 방안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런 방법들은 이미 비정상적으로 개체수가 불어난 해파리들 가운데 문제가 안 될 만큼만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해파리 대발생의 원인은 해양생태계에 가해진 인위적 변화에 의한 것들이다.
즉, 각 지역에 따라 어떤 요인들이, 특히 무성생식에 의해 개체수를 급격히 늘릴 수 있는 폴립 시기의 해파리 개체군 증가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지를 이해한다면, 이번에는 그 원인을 조절해 해파리의 수를 제어하는, 그야말로 적극적 방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해파리에 의한 문제를 풀기 위해 하고 있는 연구들이 이런 점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근본적 이해가 따라야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만하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초조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라고, 우리가 자신들을 자조 섞인 평가를 할 때 자주 얘기한다. 이제 그러지 않을 때도 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