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마당

Notification
Home 알림마당 연구소 칼럼

연구소 칼럼

환경윤리가 없다.
  • Name : 이승호
  • Hits : 1888
  • 작성일 : 2004-09-30

<전문가 기고> 환경윤리가 없다 .

생명경시풍조 인한 야생동물 멸종
개발논리 앞서 환경윤리 정립시급


한국수권환경연구센타 이승호 책임연구원

환경윤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주변에 공존하던 수많은 생명들이 인간들에 의해 사라지고 움츠러들고 있지만 인간들의 끊임없는 이기주의로 지금도 계속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더욱이 최근 밀렵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 밀렵꾼은 6천여명 정도 되며 밀거래 시장은 3천억원 규모이다. 도시화로 인한 각종 시설물 건설로 산을 없애고, 하천을 복개하고 도로건설로 산을 갈라 야생동물의 생육지 단절도 모자라 밀렵으로 야생동물의 씨를 말리고 있다.
야생동물을 방사해도 시원찮을 텐데 말이다. 단속 또한 민간차원에 의지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관계기관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관련법이 바뀌고 있으나 현실에는 늘 편법이 판을 치고 단속이 강해질수록 야생동물 밀거래 가격은 올라가 교묘한 수요공급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밀렵꾼 탓만 하겠는가? 생명경시풍조를 만들고 인식시킨데 일조를 한 것이 결국 정부정책 아니던가? 오랜동안 지속되어온 환경을 배제시킨 개발위주 정책으로 그간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갔다. 그 한 예로 시화하구에서 일어난 어패류 집단패사를 들 수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총으로 죽이고, 삽으로 때려죽이는 밀렵과 보편타당하지 않는 각종 개발 논리로 생명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행위가 과연 무엇이 다른 단 말인가?
실로 비참함을 느낀다. 이렇게 인간에 의해 죽어 묻혀 버리는 생명들이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모르고 있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인간이외의 생명을 경시하는 현상들은 우리 사회가 급성장하면서 환경윤리를 강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경과 내가 공존해야 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이 공존했던 생명체들을 집안에서 밥이나 주면서 보고 싶을 때 늘 볼 수 있고, 언제나 키울 수 있는 애완동물로 생각 한 것일까? 우린 늘 생물들을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비참히 내몰기만 했다.
현재 인류는 기술문명이 너무나 발달했고 이 기술을 이용해 자연을 무조건 지배하려들고 있다. 그러나 지배받고 있는 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은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이 본질적으로 인간과 환경을 연결시키는 매개수단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자연이 자연스럽게 남아 있을 수 있는 한계는 결국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경윤리는 자연의 큰 테두리 안에 있는 인간의 역할을 주시하고 그 사이에 성립하는 도덕적 관계에 관심을 갖으며, 이러한 관계를 규율하는 윤리적 원리들은 전 지구적인 자연환경과 그 속에 거주하는 모든 동식물들에 대한 인간의 의무와 책임을 규정해 준다.
한마디로 환경윤리는 여러가지 산재해 있는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초적인 이념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질문명 발달에 걸맞는 환경윤리를 정립시키는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모든것을 재활용하고 자연보호 의식을 생활화했던 동양적 전통 자연관을 연구하고, 환경적인 관심, 즉 환경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윤리학적 원칙을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우리의 등에 업혀있는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찬란한 자연의 가르침을 줄 수 있게 끊임없이 환경윤리를 정립하고 몸소 느끼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