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하구역의 기능 변화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연구사 권기영
하구역은 육상에서 유입된 물질이 해양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꼭 거쳐야 되는 통로이다. 하구역은 육상으로부터 공급되는 육상기원물질들을 걸러준 후 해양으로 내보내는 거대한 자연 정화조 역할은 물론, 담수와 해양생태계를 연결해주는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하구역은 육상으로부터 풍부한 먹이가 제공되고 안전한 도피처가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수산생물이 산란장과 어린시기의 사육장으로서 이용하는, 수산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하구역은 염해방지, 용지 및 용수확보 등 개발의 논리에 밀려 하구둑이 축조되면서 하구역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되었으며, 그나마 한강 이남에서 자연적인 하구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하구는 섬진강 하구역이 유일한 실정이다. 그러나 섬진강 하구역도 여러 언론매체와 환경단체에서 보고되었듯이, 각종 인위적인 개발의 영향으로 하구역이 가지는 본래의 기능을 점차 잃어가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기능이 변형되어져 가고 있음이 인지되고 있다.
바닷물의 역류로 인해 해산어종들이 하동근처에서 잡히는가 하면, 섬진강 하구의 대표적 수산어종이며, 비교적 저염분에서 서식하는 재첩의 서식범위가 계속 상류쪽으로 이동하고 그 서식구간도 점점 좁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시적인 변화이외에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서도 섬진강 하구역의 변화는 진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해양에서는 먹이사슬로 유입되는 먹이공급원이 식물플랑크톤에 의해 주로 공급되지만, 강 하구역에서는 육상에서 공급된 입자성유기물질이나 대형 수변 또는 수중식물에서 쪼개져 나온 유기쇄설물질 (detritus)이 주된 먹이공급원이다. 또한 강 하구역은 육상으로부터 공급되는 많은 부유물에 의해서 탁도가 높다. 이 높은 탁도는 수중으로 투과되는 빛의 투과율이 떨어뜨리기 때문에 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 식물플랑크톤의 양은 많지 않다.
몇 년전 필자는 섬진강하구역에서 생태계를 지탱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먹이원, 즉 식물플랑크톤과 입자물질에 관해 조사한 바가 있다. 섬진강 하구역에서는 입자물질의 농도가 비교적 낮게 나타났으며, 봄과 가을철에 하구입구로부터 20km 상류에 위치한 하동읍 바로 아래에서 해양 또는 기수역에 서식하는 식물플랑크톤의 대발생 (bloom)이 일어났다. 장마철 비가 많이 내릴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간동안 하구역 생태계에 대한 먹이공급은 식물플랑크톤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반적인 하구역은 주변 육상으로부터 공급되는 영양염으로 인해서 농도가 높은 것이 특징인데, 섬진강하구역은 식물플랑크톤의 이용으로 영양염 농도가 비교적 낮게 유지되며, 광양만으로 배출되는 양도 적은 편이다. 특히, 풍수기를 제외한 시기에는 암모니아와 인산염이 하구역에서 모두 소모되어, 오히려 광양만으로부터 역유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섬진강 하구역의 기초적인 생태계 구조가 바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강물배수량의 감소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설리반이라는 한 하구역 전문가는 하구역에서 수중 입자물질이 감소되고, 식물플랑크톤이 번성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강 상류에 건설된 댐이라고 하였다. 강 상류에 위치한 많은 댐으로 인해서 강물의 수량과 유속이 줄어들게 됨에 따라, 입자물질들은 하구역까지 제대로 운송되지 못하고, 하구역의 식물플랑크톤은 해양으로 빠르게 흘러나가지 않고 좋은 빛조건을 이용하여 대발생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섬진강의 경우에도 상류에 5개의 댐을 비롯한 수많은 저수시설과 취수장시설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섬진강하구역의 기초적인 생태계 구조 변형도 이와같은 인위적인 시설에 의한 강물수량의 감소에서 기인된 것으로 생각된다.
하구역의 기능 상실은 담수 생태계과 해양 생태계의 단절을 의미하며, 무엇보다도 하구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류의 담수권과 인접 연안의 환경과 생태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아직까지도 섬진강은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강물이 맑은 강물을 가진 깨끗한 강으로 우리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섬진강 하구역은 무관심과 개발의 논리속에서 하구역이 가지는 본연의 기능을 점차 잃어가고 있으며, 자연적으로 복원될수 있는 선을 이미 넘어선 것만은 확실하다.
섬진강 하구역의 기능을 되돌리기 위해서 상류에 위치한 인위적인 시설들의 가동을 멈추게 할 수는 없겠지만, 섬진강 하구역의 기능 복원을 위한 ‘지속가능한 개발’의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