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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박수택 수석연구위원
  • Name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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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 2025-01-17

[고양신문] 한강 작가의 소설 작품 두 편을 최근에서야 연달아 읽었다. 80년 5월 광주, 제주 4·3을 각각 무대로 삼았다. 문장이 표현하는 상황,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읽었다. 기볍지도 않았고 쉽게 읽히지도 않았다. 사람들 대화에 따옴표 부호가 없다. 꿈과 생시가 뒤섞이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독백하고 대화한다. 음울하지만 차분하고, 진지하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수레, 나아가며 계속 흔들렸고 때로는 뒤집히기도 했다. 수레에서 떨어지거나 아예 오르지도 못한 채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수레바퀴에 치이고 깔리며 눈물과 피를 쏟고, 한숨과 절규를 토해낸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은 잔인하고 거대하고 오래 갔다. 희생자, 유족의 슬픔과 아픔을 작가는 고스란히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소년이 온다)’, ‘나의 지난 사 년은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같은 무엇이었을 것이다(작별하지 않는다)’.

작가가 2021년에 발표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불어로 번역됐고 지난해 프랑스의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20여 년 전 제주 바닷가에서 월세를 얻어 지낸 적이 있다. 골목 어느 담 앞에서 주인집 할머니로부터 4·3 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던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왔던 그날의 기억이 마음 속 꿈의 장면과 만나 이 소설이 됐다고 한강 작가는 발표 당시 인터뷰에서 집필 동기를 밝혔다. 불어 번역판 제목 『Impossibles adieux(앵포시블 아듀)』는 불가능한 작별, 있을 수 없는 작별, 실현될 수 없는 작별이란 뜻이 담겼다. 사건의 목격자였을 할머니도 피해 당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날의 기억과 작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현장을 몸소 확인하며 참상의 기록을 수집하고 희생자 유족과 생존 피해자의 증언을 모았다. 원혼을 위로하고 유족을 껴안아 주는 작가의 마음결이 곱다. 작품은 절제된 표현으로 가다듬어 엮어낸 역사의 반성문이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많은 이들이 갈채를 보내며 기뻐한다. 노벨상에 빛나는 작품을 우리도 원문으로 읽게 됐다는 자부심에 기분이 들뜬다. 위대한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산다는 건 행운이며 행복이라고 여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마뜩잖게 여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도 한 모양이다.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빌어 그들의 주장도 존중받을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다만 작품의 원천이 된 아픈 역사를 부정하거나 작가를 향해 붉은 페인트를 끼얹는 행태마저 용인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들은 저급하고 편협한 존재임을 스스로 드러낼 뿐이다. 나아가 이런 사람들은 남의 어려움, 슬픔,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정치꾼들에게 온상을 제공한다. 명령에 따라 홍수로 불어난 강물에 들어간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도 공무원도 손 놓은 자리에서 젊은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정치꾼들은 원인과 책임을 밝히려는 진지함도 내 가족이 당한 듯 슬퍼하는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2006년 5월 일어난, 새만금 갯벌 조개떼 폐사 [사진 = 주용기 생태문화연구소장 제공]
무책임, 무능, 무지로 일관하는 정치꾼은 한둘이 아니다. 정책은 뒷전이고 정쟁으로 지고 샌다. 이런 무리가 자리에 앉아 뭉개는 시간은 우리들 주권자 시간의 낭비다. 그들이 누리는 온갖 혜택은 납세자들의 피땀 허비다. 국토 환경을 가꾸고 지키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선현의 얼이 서리고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함께 누리고 살아야 할 우리 강산이다. 환경 현장에선 한숨과 절규가 그치지 않는다. 세계 최장이라고 자랑하며 역대 정부가, 이른바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운동회 이어달리기하듯 바다를 가로질러 새만금 방조제를 쌓았다. 말라가는 갯벌에 비가 내리자 목 말라하던 바지락 동죽 백합이 기어올라와 빗물을 머금고는 입을 벌린 채 죽었다. 광활한 갯벌은 고스란히 조개들의 무덤으로 변했다. 갯지렁이도 말라죽었다. 봄 가을 남,북반구를 오갈 때 내려앉아 갯것을 먹고 기운 차리던 도요물떼새들도 굶주리고 지쳐 죽어갔다. 해수 유통을 늘리지 않으면 새만금은 죽음의 땅, ‘킬링필드’가 되고 만다.


가두봉(196.9m)을 깎아 바다 메우는 울릉공항 건설 현장 [사진 = 박수택]
새만금 북쪽 군산공항 바깥으로 손바닥만큼 조각으로 남은 습지를 지역 활동가들이 수라갯벌이라고 이름 붙이고 지킨다. 정부와 전라북도는 그곳마저 뭉개고 새만금국제공항을 앉히겠다고 서둔다. 실상은 중국을 겨냥한 미 공군기지 확장일 뿐이라고 활동가들은 절규한다. 낙동강 천연기념물 도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설악산에 케이블카, 멀쩡한 섬 봉우리 깎아서 바다에 밀어넣겠다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동계올림픽 며칠 스키장으로 쓰겠다며 산림유전자원 보호 숲을 밀어내고 복원 약속도 지키지 않는 정선 가리왕산... 4대강사업, 경인운하 같은 환경 파괴와 예산 낭비의 전형은 즐비하다. 경기도까지 국제공항 만들겠다며 후보지 세 곳을 거명하고 나섰다. 인천, 김포공항을 잇는 도로와 철도가 이미 바둑판이다. 정치꾼들이 조종하는 정부, 지자체가 우리 강산에 가하는 폭력은 집요하다. 잊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신음하는 강산과, 현명한 주권자라면.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