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신문] 지난 세밑에 개봉한 영화 <하얼빈>에 관객이 모여들고 있다. 외세에 침탈당해 망해가는 나라를 지키겠다고 투사들은 떨쳐 일어났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활개치던 20세기 시작 무렵, 총칼과 대포의 힘이 정의를 참칭하던 시대였다. 화면은 시종 어둡고 무겁다. 음울하고 비장하다. 싸우다 스러진 혼령들이 세기를 날아올라 씌운 듯 배우들의 동작은 현실 같고 표정은 결연하다. 현빈 배우가 연기한 안중근 의사는 국권을 침탈하고 겨레를 도탄에 빠뜨린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 역두에서 처단한다. 의로운 총탄을 원수에 심장에 쏘아 박고 영웅은 세계를 향해 외쳤다. '까레아 우라!' 대한국 만세의 함성은 불의한 압제에 숨 죽이고 살던 약소국 민중에게 일어나라 깨우치는 자유와 정의의 천둥소리였다.
하얼빈에서 여러 달 지냈고 이후에도 수 차례 방문해 풍광은 물론 도시 형성의 역사, 문화도 웬만큼 알게 된 덕분에 영화에서 받은 인상과 감동은 생생하다. 하얼빈 시내 오래된 시가지 다오리(道里)의 조선족소학교는 안 의사에게 숙소를 제공하며 도운 교민 김성백이 설립한 곳이다. 안 의사가 의거를 구상하며 거닐고 시신이 묻히길 소망했던 하얼빈공원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군 이름을 따 자오린공원으로 바뀌었다. 의사의 절의를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하얼빈의 감동은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도 살아난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땅에서 줍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애국 선열이 일제에 맞서고 독재에 항거할 수 있도록 불을 당긴 것은 불의에 눈 감지 않고 참지 못한 분노의 에너지였을 것이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의를 지키고 실천하고자 떨쳐 일어난 선열들의 분노는 거룩하다.
영화 <하얼빈>의 이토 히로부미 역은 소설 『도쿄타워』의 작가이기도 한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가 맡았다. 영화 속 이토가 내뱉듯 던지는 대사는 우민호 감독이 우리 민족에게 바치는 가슴 저릿한 찬양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왜군 장수를 껴안고 진주 촉석루 아래 남강으로 몸을 던진 논개를 기려 시인 변영로는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라며 읊었다.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가슴을 때리는 절창은 눈물샘까지 자극한다. 의를 지키고 실천하고자 떨쳐 일어난 선열들의 분노는, 시인의 말 그대로, 거룩하다.
분노라고 해도 누가, 왜, 어떻게 일으키느냐에 따라 의미도 가치도 결과도 달라진다. 국민이 뽑아 대통령 권력을 쥐어준 윤석열이 지난 연말 한밤중에 온낯에 노기를 띤 채 계엄을 선포해 온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계엄의 이유로 내세운 것들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그가 자주 입에 올리는 '반국가세력' 운운의 표현부터 객관적인 근거나 합리성을 갖지 못한다. 평소 말과 행동, 표정에서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 절도가 보이지 않았다. 성의있고 책임있는 취재나 분석을 거칠 리 없는 극우 유튜버들의 무책임하고 치우치며 자극적인 선동에 빠져 그들의 잣대로 보고 국정을 다뤄왔다. 권력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공신력 있는 언론의 보도를 통해 드러난 대통령 윤석열은 가히 '격노의 화신'이다.
권력자가 내뿜는 격노는 스스로를 주위와 차단하는 철조망, 울타리와 같다. 이성이 마비된 리더에게는 감히 비위를 거스르는 충언을 하기 어렵다. 비뚤어진 관점, 왜곡된 정보, 달착지근한 아부에 둘러싸인 대통령이 국가를 제대로 살피고 국정을 올바로 이끌어갈 리 만무하다. 지혜로운 권력자라면 온화한 표정과 겸허한 자세로 남을 대하고 마음과 귀를 열어둬야 한다. 19세기 중국 청나라의 고관으로 제국주의 영국에 맞서 아편을 엄정하게 단속한 린쩌쉬(林則徐)는 '화를 다스리다' 라는 뜻의 '제노(制怒)'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글자 편액을 서재와 대청에 걸어두고 일상으로 새기고 살폈다.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하고 자제하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어서였다. 자신을 잘 다스린 그는 애국 애민의 정치가로 존경을 받는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헌정 질서를 짓밟고 내란을 벌인 윤석열은 국회 탄핵소추에 이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사태는 두 달째에 접어들었고 해도 바뀌었지만 관저에 숨어 철조망과 경호처, 극우파 군중을 믿고 시간을 끈다. 소위 집권 여당은 그를 싸고 돌며 계엄이 정당했다고 목청을 높인다. 의식 높은 국민의 거룩한 분노를 일깨워줄 뿐이다. 유교의 성현 맹자는 임금이 인의를 해치면 임금이라 볼 수 없고 일개 사내에 불과할 뿐이니, 그런 자를 베어 죽이는 건 임금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고 제나라 선왕 앞에서 갈파했다(맹자-양혜왕 · 하). 맹자 말씀을 빌면 윤석열은 대통령이 아니라 '내란 우두머리'일 뿐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엄정한 책임을 물려야 한다. 그가 내세운 '공정과 상식'을 실현하는 길이다.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