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산, 그리고 함께 잃게 되는 것들
2010-03-05 14:06
이승호 수석연구원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에코저널=서울】필자가 사는 곳은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다. 양노리는 산간마을로 백로동, 건로동, 미륵동 등의 마을을 통틀러 이르는 지명이다. 이들 마을 이름 중 건로와 백로의 이름을 따 '양노'라는 지명으로 불린다. 백로동은 마을 뒷산에 오랜 세월 자란 소나무에 백로가 둥지를 틀어 백로동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이다.
양노리는 안산에서 5분거리 수원에서 10분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 외곽지역이다. 도시 개발이 진행된 곳에서 몇 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백로가 지금도 노닐고 있는 곳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필자가 사는 곳 앞쪽은 산과 논밭이 작은 실개천이 여러 개 보이는 곳이고 뒤쪽은 산이 둘러싸고 있다. 여름이면 각종 백로가 논과 밭에서 섭식을 하는 것이 관찰된다. 작년 여름에는 황로(Bubulcus ibis 사진)도 관찰됐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맑은 햇쌀과 맑은 공기 또 눈을 맑게 하는 산과 들, 개울 등이 보인다. 말 그대로 전원(田園)이다. 앞뒤의 넓은 산은 필자의 공원이요. 휴식공간이다. 이런 공간에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해도 오염된 땅이 아니며 넘어지면 크게 다치는 아픈 아스팔트가 아니니 얼마나 좋단 말인가 ?
또한 먼지와 전자파가 풀풀 나는 컴퓨터와 함께 삭막함과 외로움을 느끼기 보다는 산과 들과 개울을 보며 뛰어 노는 아이들이 흙내음, 풀내음을 맡아가며 마음껏 뛰놀게 한다면 얼마나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겠는가.
주변에서 식물이나 동물들, 흙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매우 매말라 있을 수밖에 없다. 요즘 자주 발생하는 범죄가 패륜적, 반인륜적인 범죄가 증가한 것도 생명의 공존성과 존엄성을 몸소 체험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학계에 보고 된 여러 자료에 의하면, 정서 함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유년시절에 흙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대체로 심성이 착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요즘 일어나는 패륜적, 반인륜적 범죄들은 현대사회가 흙을 멀리한 결과라는 강한 반증이다.
청주교대 유아교육과 김숙자 교수 연구결과물에 따르면 "흙을 밟고 자란 아이들은 마음속에 있는 매듭을 흙을 통해 풀어버릴 수 있다"면서 "마음속 매듭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필자는 그래서 이곳을 좋아한다. 산과 들과 물을 가까이 할 수 있어서,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침에 엄청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파트 뒤편에서 들리는 소리 같아 뛰어나가 창문을 열어봤다. 푸른 나무와 아름다운 백로가 날아다니던 산이 시뻘건 속살을 드러내며 중장비로 파헤쳐 지고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중장비로 파헤쳐진 산은 덤프트럭이 계속 실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안타까워 산이 파헤쳐 지는 이유를 알아보니 주택을 짓는 다고 한다. 도대체 왜 산을 파헤치고 집을 만들려고 하는지 또한 덤프트럭이 모여들어 산을 분해하고 있는 것에 가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간혹 어떤 사업은 주목적이 다른 곳에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집을 짓는다고 허가를 받고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만들면서 생긴 골재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당연히 그냥 골재채취를 위한 허가를 받는 것보다 주택을 만들기 위한 인허가가 더 용이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부분을 악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부디 필자의 뒷산은 그러한 경우가 아니길 바란다. 또한 그러한 부분에 대한 관련법이 더욱 강화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항상 개발이라는 것이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우리주변에서 사라져 간 것이 식물과 그 터전인 산이다. 식물이 사라지면 그 속에 공존하는 동물도 사라진다. 맑은 공기도 사라진다. 우리 아이들이 뛰어 놀고 보고 배우는 산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산을 마음속에 그리면 살았던 사람들의 모든 추억도 가져가게 된다. 개발사업은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엄격해야 한다.
오늘 아침은 파헤쳐진 산의 속살이 더욱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