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어디로? 2006-07-03 17:12
이승호 책임연구원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장마철이 다가왔다. 비가 오다가 그치다가 참으로 변덕스럽다. 이 비가 그치면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리라는 것은 확실한데 주변 환경은 참 불안하고 더 변덕스럽다 인간이 불안할 정도니 주변 동식물이야 오죽 하겠는가?
모처럼 필자는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이라는 단어는 늘 누군가의 가슴에 따뜻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옛 기억과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향, 예전에는 도로 복개율이 낮아 비가 올 때 걸어 다니면 신발에서 흙이 튀어 올라 바지 뒤쪽을 황토 빛으로 물들이곤 했다. 그 시절에는 황토물 튀는 것이 왜 그리 싫던지 조심조심 신발을 옮기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땐 한가지 더 조심하던 일이 있었다. 땅바닥을 보면서 지렁이를 밟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사실 지렁이를 밟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다가 바지 뒤쪽에 더 많은 흙탕물이 튀었다. 근데 요즘은 지렁이가 보이질 않는다. 비가 오는 날에도 지렁이는 나오지 않는다.
오늘 필자의 고향에도 비가 왔다.
지렁이를 찾아 바닥을 한번 둘러보았다. 전부 시멘트와 아스팔트뿐이다. 마냥 뛰어 다녀도 흙탕물이 튈 것 같지 않다. 어렸을 때와는 다른 아쉬움이 밀려 왔다. 두리번두리번 혹시 지렁이가 있을 까 찾아보았다. 그런데 지렁이가 눈앞에 보였다. 반갑게도 지렁이 몇 마리가 어디론가 계속 가고 있었다. "어디서 나왔을 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변에는 시멘트와 아스팔트 뿐인데도 4마리의 지렁이가 나와서 꾸물꾸물 돌아다녔다. 지렁이를 보니 참 기분은 좋았다가 "어디 땅을 찾아가야 할텐데"란 걱정이 들었다.
지렁이가 살수 있는 좁은 틈조차 없이 흙과 하늘을 두꺼운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차단한 것이 참 한심스러웠다. 좀더 주변생물들을 고려하여 투수성 블록을 만들어 시공했더라면 인류에게도 편하고 생물에게도 분명히 삶의 공간이 생겼을 텐데 말이다. 우리의 이기심이 작은 동물이 살 공간조차도 허용하지 않아 삭막하다. 필자의 눈앞에 있던 지렁이는 이곳 저곳 흙을 찾아다니다 결국 말라죽을 것이다.
지렁이는 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생태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지렁이는 식물이 살수 있는 비옥한 토양과 토양 생물이 살수 있도록 분변토를 만들어 낸다. 지렁이는 다량의 토양을 섭취해서 소화시킨 뒤 배설물로 내놓는데, 배설물에는 치환성 칼슘, 마그네슘, 칼리질, 인산 및 미량원소가 함유되어 있어 식물의 성장과 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 또한 분변토는 악취가 없고 입자 (0.2㎜∼2㎜)가 매우 고르며 식물의 뿌리 활착이 우수하다. 식물 성장성이 좋아 조기에 수확이 가능하도록 하며 과실류는 당도, 과중, 크기, 모양새를 아주 좋게 만들어 준다. 수확량도 약 10∼30%의 증수 효과를 가져온다.
인류에게는 삶의 여유가 이렇게 없을까 ?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서 지렁이가 살수 있는 몇 mm의 작은 공간도 허용하지 않는다. 야생동식물이 살수 없으면 인류의 생존도 없다. 생물은 서로 공존해야 하며 생물, 비생물 요인이 복합적 상호작용을 하며 생태계는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생태계의 인위적 단절은 결국 우리의 목을 스스로 조이게 할 뿐이다. 삶의 여유로 생물에게 작은 틈이라도 허용하자. 인류의 생존도 결국 생물공존의 바탕 위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