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훼손이 추억도 사라지게 한다 2006-04-21 09:01
이승호 책임연구원
(한국종합환경연구소)
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가끔 바람과 비가 나들이를 시샘하지만 주말에는 물론 평일 날에도 차량이 늘어만 가는 계절이다.
산과 들에는 풀꽃 내음이 가득해 우리들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으며 아이들 소풍날처럼 가슴 설레게 한다. 나무는 녹색 새 옷으로 갈아입고 풀은 새로 돋아나 파릇파릇하기만 하다.
산과 들에만 녹색이 가득 차는 것은 아니다. 갯벌에 나가보면 조간대 상부에 염생식물이 살짝 빨간 잎을 하늘 향해 펼치고 있다. 이 빨간 잎은 발아된 지 1달 정도가 지나면 녹색으로 변한다.
염생식물은 필자가 습지생태학에 관심을 갖은 후부터 늘 머릿속에 존재하는 생명체식물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근 염생식물은 웰빙붐과 함께 많은 관심의 대상었으며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이슈를 따라 움직였다. 대부분의 염생식물이 예로부터 보양음식과 약재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폐염전과 갯벌 상부에 주로 생육하는 퉁퉁마디(Salicornia herbacea)는 명아주과 식물로 당뇨, 고혈압, 변비에 특효가 있다. 사구에 주로 생육하는 갯방풍(Glehnia littoralis)은 미나리과 식물로 해방풍(海防風)·빈방풍(濱防風)·해사삼이라고도 불리며 전체에 흰색 털이 나고 뿌리는 모래 속에 깊이 묻히며 자라는 높이는 20cm 정도다.
발한, 해열, 진통에 특효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구에 잘자라는 수송나물(Salsola komarovi)은 명아주과 식물로 가시솔나물, 저모채로도 불린다. 유채는 부드럽과 연하지만 자라면서 굳어져서 잎 끝이 가시처럼 된다. 각종 영양이 풍부하고 온갖 염증과 비만증·고혈압·황달에 특효다.
갯벌의 여러 장소에서도 생명력이 강해 잘 자라는 갈대(Phragmites communis)는 화본과 식물로 한방에서는 봄에서 가을 사이에 채취해 수염뿌리를 제거하고 햇볕에 말린 것을 약재로 사용한다. 부위에 따라 뿌리줄기를 노근(蘆根), 줄기를 노경(蘆莖), 잎을 노엽(蘆葉), 꽃을 노화(蘆花)라 하여 진토(鎭吐)·소염(消炎)·이뇨·해열·해독에 사용한다.
이렇듯 염생식물은 우리 생활에 밀접한 연관이 있었으며 선조들의 추억과 그 역사를 같이 하는 식물이다. 새만금을 비롯해 각종 대규모 간척 매립공사는 염생식물의 생육지를 빼앗아 갔고 염생식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염생식물이 사라지면서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도 같이 사라지고 있다. '해안습지'는 퇴적지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퇴적지형에 염생식물이 생육해 식생대를 구성해야 안정된 해안습지라고 말할 수 있다.
해안습지는 기능에서나 가치 면에서 매우 중요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습지의 체계적인 관리는 고사하고 오히려 파괴를 더욱 자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습지가 많은 내만과 하구가 지난 '84년 당시 155곳에 4천180㎢에 달했으나 이를 모두 간척할 수 있는 공간으로만 인식한 결과 해안습지가 65%나 사라졌다. 습지관리가 잘되고 있는 해외 선진국들은 '50년대부터 습지의 개념을 정립하고 '70년대 이후 습지 분류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80년대와 '90년대에는 습지목록을 작성, 습지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습지가 많이 파괴되고 해안습지의 기능이 사라져 조간대 생태계는 물론 해양생태계까지 먹이연쇄(물질순환)의 단절을 초래하고 있다. 해안에서 염습지가 급속히 사라지는 시기에 연안에서 수산자원이 빠르게 감소했고 해양환경, 특히 적조의 발생건수와 발생지역이 확대됐다.
수산자원인 경우 단위 노력당 어획량으로 보면 '70년대 최대 시기와 비교해 '94년의 값은 약 1/10에 해당한다. 이러한 수산자원의 감소는 갯벌을 비롯한 해안습지의 감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주에는 동검도에 염생식물 복원 실험을 위해 필자의 연구소 팀이 조사를 진행했다. 열심히 뻘을 오가는 우리들 앞으로 한 노부부가 다가왔다. 우리 연구원들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갯벌에서 무슨 일을 이토록 열심히 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한참 필자의 설명을 듣던 노부부는 참 고생 많이 한다고 하면서 동검도에 온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동검도가 고향인데 오랜만에 와보니 아름다운 산과 갯벌, 모래사장이 대부분 훼손돼 예전에 모습이 전혀 아니다"면서 "옛 기억을 되살리려고 왔는데 실망만 가득 안고 간다"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사실 필자는 몇 년간 이곳에 조사를 다니면서 변화를 모니터했다. 초지대교가 생기면서 강화도에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외지인들이 산을 밀고 건축물들을 이곳저곳에 만들면서 산이 삭막해져가고 있었다. 바다에는 양식장이 들어서면서 사구가 사라지고 있었다.
노부부는 환경훼손으로 인해 자신들의 추억마저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각종 개발사업으로 무엇이 얻는 것이고 잃는 것인지 갯벌을 단지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해서 될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할 문제가 아닌지 참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