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자급자족 사회
〈정선철/사회설계연구소장〉 [경향신문 2006-05-12 19:24]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여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 현지생산•현지소비 또는 자급자족의 뜻)’ 사업이 구미와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본 하치노헤의 지방형 모델은 2005년에 세계 최초로 실험에 들어가 있고 요코하마에서도 도시형 모델 사업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정책 획기적 전환 필요-
왜 에너지의 ‘지산지소’가 필요한가? 요코하마 모델 사업의 관계자는 “인류의 에너지 이용 역사는 지산지소에서 근대화와 함께 수입 의존 방식으로 변했으나 21세기에는 또다시 지산지소 사회로의 복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수입 의존을 계속할 경우 에너지 및 지구환경 위기를 초래하여 분쟁이 빈발하는 파국적 미래밖에 없지만 ‘에너지 지산지소’를 실현하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고 새로운 에너지•환경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에너지 지산지소를 실현하는 삼위일체 사업으로 수요의 최적화, 공급의 최대화,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이 필요하다. 첫째, 수요의 최적화로 에너지 소비량의 3분의 1을 삭감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기, 건물, 열병합발전, 연료전지 등을 도입하여 도시 자체를 에너지 낭비가 없는 구조로 바꾼다. 둘째, 현지의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에너지의 생산을 최대화하여 화석 에너지 공급량의 3분의 1을 대체한다. 셋째, 날씨에 따라 불안정한 자연 에너지의 약점을 극복하고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열•가스•경유 등을 상호융통하여 사용하는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를 통해 화석 에너지 사용량을 3분의 2 줄이고, 원자력 발전을 활용하여 더욱 많은 화석 에너지 삭감을 실현한다.
장기적으로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 장비의 일부를 개량하여 바로 수소 에너지 사회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원자력발전소가 불필요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한다. 주목되는 점은 바로 수소 에너지 체제로 이행할 경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비즈니스로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마이크로그리드와 같은 이행기 방식이 필요하다. 시민과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에너지 진단사’가 수요자를 방문하여 에너지 진단과 처방을 해줄 수 있다. 새로운 에너지 설비를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리스•렌털 방식을 활용하고 환경세와 배출권 거래제의 도입도 논의된다. 이같이 에너지의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켜 ‘에너지 대박’을 준비하는 지산지소 모델은 세계의 새로운 트렌드다.
이러한 새로운 세계동향에 입각하여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한국은 에너지 위기에 대해 단기 응급 대책과 동시에 체질 자체를 에너지 지산지소 사회로 바꿔야 한다. 화석 에너지 수입 강화에만 매달릴 경우 앞으로 본격적인 에너지 위기가 우려된다. 강제적인 온실가스 삭감 충격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산업에 이어 최대 산업인 수소 에너지 산업도 놓칠 수 있다. 에너지 지산지소 정책을 한국이 선도한다는 생각으로 에너지 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지산지소 시스템 1석3조 해법-
둘째, 조속히 마이크로그리드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지산지소 모델을 개발하고 국내외에 가속적으로 보급해야 한다. 한국은 화석 에너지 빈국이지만 자연 에너지 부국이다. 그러나 현재 방식으로 자연 에너지 비중을 높일 경우 상용전력 계통의 불안정성을 초래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연료전지, 수소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려 할 경우 채산성 문제로 시민과 기업의 자발적 실천이 어렵다. 이행기 대책으로 우선 마이크로그리드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지산지소 시스템을 도입해 한국의 자연 에너지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 수소 에너지 사회로 먼저 나가야 한다.
에너지 지산지소 시스템은 새로운 동향으로 아직 상용단계는 아니다. 한국은 적어도 몇 년 후 일본이나 구미와 동시에 상용화할 수 있을 정도의 정책추진 속도가 필요하다. 장기적•종합적인 시점에서 에너지 문제에 접근하여 에너지 자급률을 올리면서 이산화탄소를 삭감하고 에너지•환경산업을 창출하는 일석삼조의 해법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