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국의 갯벌
글. 고철환(서울대 해양학과 교수)
갯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선 갯벌이 만들어지려면 모래나 뻘같은 개흙이 있어야 한다. 개흙은 바닷물 속에 있는 모래, 뻘 입자들이 가라앉은 것이며, 서해바다를 황해(黃海)라 부르는 이유도 물속에 뻘 입자가 많아 바닷물이 누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뻘 입자는 육지에서 강을 따라 바다로 들어왔다. 비온 후 흙탕물이 강을 따라 바다로 흐르면서 모래와 같은 무거운 입자는 가라앉고 가벼운 뻘 입자는 바다로 흘러드는 것이다. 중국의 황해에는 양자강, 황하에서 흘러오는 흙이 1년에 약 15만톤이나 된다고 하니 갯벌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갯벌이 걸어온 길....
◆ 갯벌의 역사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오래 흙이 쌓여야 지금과 같은 갯벌이 만들어질까. 놀랍게도 8천년 전에는 서해바다가 육지였다고 한다. 지구의 45억년을 하루 24시간으로 놓고 볼 때 8천년이라는 시간은 불과 1초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뻘이 바다에 쌓인 것을 보면 육지에서 깎여 내려간 흙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있다.
서해는 빙하가 녹아 흘러들어온 물이 고여서 생긴 바다이다. 지구역사상 빙하기는 1백번 이상이 있었는데, 마지막 약 2만년 전 위스콘신 빙하기 때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백40m나 낮았다고 한다. 서해의 수심이 현재 연안지역이 40m, 중앙부가 80∼90m인 것과 비교하면 위스콘신 빙하기때 서해는 육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후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로 흘러들어와 해수면이 차츰 높아지면서 서해는 바다로 변했고, 광활한 갯벌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갯벌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곳에 발달해 있다. 그리고 이런 곳은 대체로 움푹 들어간 만(灣)의 형태로 되어 있다. 물이 달의 인력에 끌려 계속 흐르다가 만같은 골목에 다다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빠질 때는 골목에 갇힌 물이 모두 빠져야 하므로 빠르게 멀리까지 빠져나간다.
이런 조건들이 합치해서 갯벌이 만들어진 곳은 세계적으로도 몇 군데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서해안, 영국, 독일,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해안, 캐나다 동부해안, 미국 동부 조지아 해안, 남아메리카 아마존 하구 등이 바로 그곳이다.
◆ 우리나라의 갯벌
우리나라 갯벌의 넓이는 남한의 경우 2천8백㎢로 남한 전체 면적의 3%에 해당한다. 남한의 경지면적이 1980년 현재 약 2만㎢, 이와 비교하면 갯벌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갯벌의 분포도를 보면 전체 면적의 83%(2만3천여㎢)가 서해안에 분포하고 나머지 17%(4백80㎢)가 남해안에 분포한다. 남해안이 섬도 많고 해안선이 더욱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갯벌의 면적이 적은 것은 역시 조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 경기도 해안의 갯벌
경기도 해안에는 약1천㎢에 가까운 갯벌이 발달되어 있다. 이곳에는 강화갯벌, 인천갯벌, 시화갯벌, 남양갯벌이 대표적이다. 특히 강화도, 석모도, 볼음도, 영종도, 용유도, 무의도 등의 섬 주변에 대규모 갯벌이 발달돼 있으며, 장봉도, 영흥도, 자월도, 덕적도, 대부도에도 독립적인 갯벌이 산재해 있다.
약 3백㎢에 달하는 강화갯벌은 한강, 임진강, 한탄강, 예성강 하구에 이들 강으로부터 유입된 토사가 쌓이는 곳이다. 평균 조차가 약 8m로 매우 크고 섬이 많아 갯벌이 넓게 발달한 곳이다. 이곳은 지금까지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은 몇몇 갯벌의 하나였으나 최근 영종도 신공항 건설로 인해 매립되어 버렸다.
인천갯벌은 김포갯벌, 송도갯벌, 남동갯벌로 나누어지는데, 김포갯벌은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송도갯벌은 전형적인 모래갯벌로 우리나라에서 동죽조개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남동갯벌은 염전을 끼고 있던 곳이었으나 이미 매립되어 공단이 들어서 있고, 신도시 매립공사로 인해 16㎢의 갯벌이 사라졌다. 총 2백㎢에 달하는 시화갯벌은 시화공단조성과 시화호 건설로 인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돼 있다.
남양갯벌은 움푹 파여진 내만이기에 뻘로 이루어진 갯벌이다. 하지만 남양만 방조제로 인해 60㎢가 사라지고 작은 규모로 남아있지만 뻘 갯벌이기에 가리맛조개가 많이 나는 곳이다. 우리나라 가리맛 조개의 90%가 이곳에서 채취되고 있다. 대부도와 제부도 부근에는 간척사업이 진행중이며, 이로 인해 약 40㎢의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
◎ 충청도 갯벌
아산만에서 시작해 천수만을 거쳐 장항으로 이어지는 충청도 갯벌은 아산만갯벌, 대호갯벌, 가로림만갯벌, 천수만갯벌, 장항갯벌로 나누어진다. 아산만 내에는 아산방조제, 삽교방조제로 막혀진 두곳이 대표적인 갯벌이었으나 지금은 농토로 변해버렸고 일부만 남아있다. 태안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가로림만내에는 80㎢라는 비교적 넓은 갯벌이 발달돼 있는데, 굴양식장, 조개, 특히 바지락 양식이 유명하다. 이곳은 만의 입구가 좁고 조차가 7m나 되어 조력발전소가 계획되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근처에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 오염이 심해지고 있다.
태안반도의 가장 서쪽 돌출부에도 소원, 소근, 안홍갯벌 등 몇몇 소규모 갯벌이 있으며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천수만 안쪽에 발달했던 1백60㎢의 대단위 갯벌은 80년대 초 서산 A, B지구 간척으로 인해 사라져버렸다. 비인만에서 장항부근까지 비교적 넓은 갯벌이 발달돼 있고, 유부도, 개야도 주변에도 독립된 갯벌이 분포해 있다.
충청도해안의 갯벌 면적은 총5백㎢에 달하지만 당진군 석문지구, 태안군 신진지구, 서산 A, B지구, 서산 대호간척지, 금강하구둑, 보령·남포지구 등이 간척 또는 매립되어 약 3백㎢가 넘게 사라졌다. 총 면적의 60%가 이미 파괴된 셈이다.
◎ 군산, 김제, 부안, 곰소만 갯벌
군산에서 김제, 부안까지 약 1백㎞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펼쳐진 갯벌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광활하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금강하구로부터 군산 앞바다의 오식도를 거쳐 수라, 거전, 계화로 연결되는 이 갯벌은 총 면적이 약 2백㎢에 달한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이 갯벌과 연결되어 있으나 여름 홍수 때를 제외하면 담수의 유입은 매우 적은 편이다. 특히 이곳에는 농업진흥공사가 간척공사를 하고 있는 ‘새만금’지구가 있는 곳이다. 군산 해안가 수라에 가면 군산앞 오식도로 연결되는 갯벌에 들어갈 수 있다. 바닥이 딱딱한 모래로 되어 있어 어민들은 경운기를 타고 들어가 조개를 잡는다.
갯벌이 가장 넓은 곳은 거전에서 고군산군도를 바라본 방향이다. 만경강에서 나오는 수로가 이곳까지 연결되기는 하나, 이 수로를 넘어서면 약 20㎞를 걸어갈 수 있다. 보통 물이 빠지는 시간은 너댓시간인데, 그동안 이곳 갯벌의 끝까지 갔다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만경강 하구의 경창이나 동진강 하구 우마, 광할리에 가면 갯벌이 비록 2∼3㎞밖에 안되지만 전형적인 뻘 갯벌을 볼 수 있다. 군산, 김제, 부안에 이르는 갯벌은 전체가 바지락 양식장인데, 한 사람이 30㎏씩 일년 내내 잡아도 자원이 줄어들지 않는 매우 특이한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간척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우리나라 최대의 갯벌이 위기에 놓여 있다. 농업진흥공사에서는 ‘새만금’ 간척공사가 넓이 4백㎢에 제방 길이 40㎞에 이르는 등 세계 최대규모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실은 세계 최대규모의 갯벌파괴에 다름 아니다.
곰소만은 변산반도 아래에 깊게 패여진 내만이다. 채석강으로 경관이 수려한 곳이기도 하며, 갯벌의 넓이는 약 80㎢이르는 뻘로 된 지역이다. 이곳은 특히 새우젓으로 유명하다.
◎ 전남, 목포지역 갯벌
전남 영광에서 무안, 함평, 목포를 거처 해남에 이르는 전라남도의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섬도 많아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의 갯벌은 대부분 임자도, 지도 주위와 함평 해안가에 분포해 있다. 이곳에는 영산강 하구역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개발된 곳이 없으나 앞으로 서해안 개발이 진행되면 더 이상 자연적인 갯벌은 보기 힘들 것이다.
특히 이 지역은 대부분의 갯벌이 움푹패인 만이기에 군산, 김제, 부안에 이르는 광활한 맛은 없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갯벌을 모두 합치면 약 9백㎢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면에서는 남한 제일일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은 교통이 불편해 아직까지도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 갯벌 간척의 허와 실
이처럼 서해안에 널려있는 천혜의 자산인 갯벌이 위기를 맞고 있다. 간척과 오염이 그 주요한 원인이다. 지금까지 간척은 ‘농토확장’과 ‘산업시설을 위한 토지창출’이라는 두가지 수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농토확장을 위한 간척사업을 평가해 보자. 갯벌을 간척 후 농지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 수산업을 농업으로 전환하는 사업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수산업을 반드시 농업으로 바꾸어야 하는가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더구나 환경부 보고서에 의하면 간척 후의 에이커당 미곡 생산가치는 2백47만원이었으며, 갯벌을 그대로 두고 수산물을 생산할 경우는 에이커당 3백65만원의 가치가 발생했다. 농업과 수산업을 순전히 경제적 가치로 직접 비교해도 수산업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로는 산업시설을 위한 토지창출에 있어서도 몇가지 대안적 사고가 필요하다. 우선 토지는 왜 하필이면 ‘갯벌’에서 얻어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갯벌은 쓸모 없는 땅’이라는 잠재 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아마 갯벌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갯벌이 가진 수산업적인 가치(경제적 가치)에 환경적, 심미적 가치를 더한다면 갯벌은 어느것 보다도 귀하게 보전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독일은 갯벌을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국가이다. 독일의 연근 해안 북해가 오염의 징후가 보인다는 보고서들이 발간되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갯벌을 보전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이에 북해연안 3국, 즉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가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여 각 국가가 이에 대처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은 88년에 갯벌을 국립공원화하기 시작했고, 그 면적은 우리나라 남북한이 가진 갯벌 규모이다.
지금도 2년마다 이들 3국회의가 열리고 있으며 백년의 역사를 가진 갯벌연구소를 가지고 있다. 갯벌국립공원관리청은 갯벌의 건강상태를 파악할 뿐 아니라 관광객에 대한 안내도 담당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갯벌이 세계적으로 희귀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갯벌을 가졌다는 것은 희귀한 자연자산을 가졌다는 뜻이다. 독일이 갯벌 국립공원화에 성공한 것 역시 갯벌의 이같은 심미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의 간척공사를 외국과 비교하면 규모가 매우 크다. 대표적인 지역으로 영종도 국제공항, 수도권 매립지, 남동공단, 시화지구, 아산만 지역, 천수만 A, B지구, 군장지역, 새만금, 영산강 지구 등을 꼽을 수 있다.
간척 후 토지의 소유가 분명한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천수만 A, B 지구처럼 개인이 소유하는 곳도 있다. 인천 연안의 동아매립지 역시 동아건설이라는 재벌소유이다. 간척 전에는 우리 모두의 공유지였으나 이제는 모두 사유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농업진흥공사, 토지개발공사, 또는 수자원공사와 같은 공사에서 사업을 수행하더라도 이들 공사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간척지를 분양한다.
갯벌을 간척하는 이유가 간척 후의 토지매매를 통한 이익, 즉 간척 차익을 취하는 당사자가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익은 환경을 팔아 얻은 것이므로 언젠가는 환경에 돌려주어야 할 차익이다. 이미 시화호에서 그 단초를 우리는 보고 있다. 한번 변형된 자연은 영원히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간척사업의 무모함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출처 : 한국의 갯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