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도시’ 울산에서 국제회의가 열려 고래잡이 허용 여부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27일 개막된 국제포경위원회(IWC)에는 61개국에서 800여명이 참석했으며,다음달 24일까지 계속된다.
이 회의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5일간의 총회다. 이번 총회에서는 19년 전 금지된 상업포경의 재개여부가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포경 재개를 주장하는 나라는 일본 노르웨이 등 29개국이고,반대하는 국가는 미국 호주 등 32개국이다. 우리나라도 원칙적으로 재개 편에 서 있다. 이런 가운데 그린피스와 환경운동연합 등 국내외 포경반대 단체들의 격렬한 장외 시위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회의를 계기로 상업포경이 다시 허용될 전망은 희박해보인다. 포경 재개를 위해서는 회원국 4분의 3이 찬성해야 하지만 회의 기간중 포경재개 반대국들의 입장에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포경 허용=일본 등 상업포경 재개를 지지하는 국가들은 세계 도처에서 고래가 먹어치우는 물고기의 양이 연간 3억∼5억뻌으로 세계 총어획량 1억뻌의 3∼5배에 해당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고래가 바다생태계 먹이사슬 구조상 맨 위에 있기 때문에 고래를 적절히 솎아내지 않을 경우 생태계 자체가 파괴될 수 있으며,어획량의 급속한 감소로 세계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포경재개추진협의회 변창명 회장은 “이런 추세로 고래가 먹어치운다면 사람뿐 아니라 고래들도 멸종으로 가는 길이다. 고래도 살고 사람도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효율적인 관리를 통한 포경 재개를 희망했다.
울산시어업협회측은 “1986년 상업포경 금지 이후 우리나라에 돌고래 등 소형고래가 급증,간신히 형성된 어군을 분산시키고 먹어치워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며 “당시 수산당국이 IWC가 금지도 하지 않았던 소형고래 포획 금지를 이번엔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경재개를 찬성하는 국가들은 번식력이 왕성한 돌고래에 의한 피해가 세계적인 현상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의 국가들이 돌고래 포획을 금지하는 바람에 돌고래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어와 대구 등 어자원의 개체수를 급감시켰다는 주장이다.
당초 IWC의 관리대상은 멸종위기에 처한 대형고래류 13종뿐인 만큼 돌고래 등 길이 4뻍 이내의 소형 고래류는 즉각 포경금지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88년 이후 까치돌고래 등 8종의 소형 고래류를 연간 2만여마리 포획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페루에서는 연간 1만마리,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에서도 연간 수천마리의 돌고래를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경 반대=지난 3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자체 선박인 레인보워리어호를 타고 우리나라에 와 환경단체들과 연계해 ‘고래야!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슬로건과 각종 퍼포먼스로 포경 반대 행사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 여론을 포경 반대쪽으로 몰고가는 데 일정한 영향력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그린피스와 우리 환경단체들은 포경 재개는커녕,과학조사 명목의 포경도 중단할 것과 고래고기의 유통 자체를 막아줄 것을 주장한다. 그렇게 해야만 불법 포획과 의도적인 혼획(다른 고기를 잡기 위해 쳐둔 그물에 우연히 고래가 걸려 잡는 행위)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포경 반대국들은 상업포경의 중지를 선언한 지 19년이 지났음에도 대형고래들이 계속 감소추세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건전한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포경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들 국가는 또 돌고래 등 소형 고래의 급격한 개체수 증가라는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고래는 한번에 수천 수만개의 알을 낳는 어류가 아니라 2∼3년에 새끼를 한 마리씩 낳는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개체수가 급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울산대 생명과학부 신만균 교수는 “고래는 다른 해양생물에 비해 수명이 길고 재생산율이 낮아 한번 자원이 감소하면 회복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강조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성급하게 상업포경 재개를 논의하기보다는 호주처럼 고래 관광을 상품화해 인간과 고래가 공존하고,지역 경제도 함께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주변 고래 현황=한반도 주변에는 어떤 고래가,얼마나 서식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안에는 30여종의 고래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을 뿐 그 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고래수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국립수산과학원이 2000∼2001년 처음으로 시험조사선을 타고 제한적인 수역에서 육안관찰법으로 조사하고 추정한 수치다.
이에 따르면 긴부리참돌고래 6만마리,짧은부리참돌고래 2만2000마리,밍크고래 2500마리 등 대략 11만마리 이상의 고래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어민들은 최근 어업현장의 경험으로 볼때 1986년 상업포경 금지 이후 고래가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추정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최근 한·일 여객선이 고래와 부딪쳐 고장을 일으키는 사례가 2차례나 발생했으며,각종 선박에서 고래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동안의 조사로 멸종위기종인 상괭이,범고래,향고래,흑범고래도 수시로 발견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고래가 증가한 원인은 최근 10여년간 겨울철 수온이 섭씨 1∼3도 높아져 고래 분포 한계가 북상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