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원지를 ‘둔갑’시켜 납품해도 적발안돼
국내업체도 생산중단
공공기관의 친환경 상품 우선 구매제가 10년이 지나도록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데는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물자를 조달하는 조달청과 우선구매제 주무 부처인 환경부의 책임이 크다.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대표적 재활용 제품은 전자 복사용지다. 환경부가 집계한 2003년도 공공기관의 용도별 친환경 제품 구매실적을 보면, 공공기관들은 지난해 재활용 제품 구매총액 1005억8882만1000원의 17.6%인 176억7699만3000원을 전자복사 용지(건식 2종) 구입에 쓴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이 재활용 제품으로 알고 사용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전자복사용지 가운데는 100% 천연펄프로 만든 수입품도 포함돼 있다. 환경부에 설치된 복사기에 들어 있는 복사용지도 예외는 아니다.
조달청이 운영하는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에서 재활용 제품으로 팔리는 복사용지를 납품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사실은 중국에서 수입한 원지를 잘라서 포장해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납품업체의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 원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수입산 원지로 만든 복사지가 재활용 제품으로 둔갑해 납품되고 있는 데 대해 제지업계 관계자들은 “조달청이 입찰 때 재활용 제품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납품가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매해 녹색시장 기반을 조성한다는 우선구매제의 취지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애써 폐지를 재활용한 전자복사지를 개발했던 국내 업체들은 값이 싼 수입지와의 가격경쟁에서 밀려 설자리를 잃고 있다. 실제 국내 제지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폐지를 재활용한 전자복사지(건식2종)에 대해 환경마크와 우수 재활용 인증을 모두 받았던 업체인 대한제지는 2002년 말 이후 재활용 제품 전자복사지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제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달청에 재활용 제품으로 납품되는 전자복사지의 60% 가량이 수입원지”라며 “조달청이 바뀌지 않는 한 공공기관의 친환경 제품 우선구매가 권장에서 의무조항으로 강화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