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용 어린 시절 우리 집 앞마당엔 항상 돼지우리가 있었다. 어머님은 새벽장에 채소를 내다파신 뒤 식당을 돌며 남은 음식물들을 모아 머리에 이고 오셨다. 이것을 ‘꾸정물’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에 방앗간에서 가져온 분겨를 섞으면 훌륭한 사료가 됐다. 이렇게 키운 구정물 돼지고기는 맛이 담백하고 쫄깃쫄깃해 비싸게 팔 수 있었고, 그 돈은 우리의 등록금이 됐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도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랐던 경험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도 함부로 음식을 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남은 음식물로 생균사료를 만드는 연구를 거의 10년 동안이나 해 왔다. 남은 음식물을 가열해 살균한 뒤 잘 부순 곳에 김치나 막걸리 등의 발효식품에서 분리한 유산균이나 효모 등 발효균을 키우면 젖산이나 알코올이 생성돼 부패가 방지된다. 더구나 발효균들은 냄새 성분을 먹고 자라므로 악취도 없고, 요구르트처럼 가축들의 위장을 건강하게 만들어 민감한 환경문제를 낳고 있는 항생제 투여도 줄여 준다.
그러나 자리를 잡아가던 남은 음식물 사료화 사업이 계속 표류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광우병이나 구제역 파동 때 애꿎게 된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광우병은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들어 있는 육류를 먹은 사람이나 동물에게서만 발병될 수 있다. 아직 광우병 발병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사람들이 먹고 버린 음식물부터 의심하는 것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예방 차원에서 초식동물인 소 등의 반추동물들에게 동물성사료가 일부 섞여 있는 음식물 사료를 먹이는 것을 중지하자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에도 음식물사료를 금지했는데 사실 이 사료로 돼지를 키워 온 축산농가에서는 구제역이나 콜레라같은 전염병이 발병한 예가 없다.
남은 음식물은 하루만 지나도 저절로 젖산균 등의 발효성 세균이 증식하면서 산도가 크게 증가해 pH가 4이하로 떨어진다. 마늘이나 고추 등에 함유된 천연 항균물질들 때문에 부패균이나 병원균들이 증식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인들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에 걸리지 않은 이유가 김치같은 발효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이것이 서양음식과 달리 한국의 남은 음식물이 위생적으로 안전하다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이기영 호서대 교수 singreen.com